광양 옥룡사지 문화·유적

- 동백꽃 소녀상

동백꽃이 한껏 피는 봄날이면 황홀한 곳 광양 옥룡사지(玉龍寺址)를 한겨울에 찾아갑니다. 

절터는 백계산 남쪽 계곡 아랫부분에 있습니다. 입구 주차장에서 절터까지 800m쯤 됩니다. 400m쯤 되는 곳에 동백꽃 소녀상이 있고, 이 이후로는 동백나무 숲길입니다.

- 동백나무 숲길

길가에 늘어서 있는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입니다.

- 동백나무 숲

이 동백나무들은 신라 말의 고승 도선(道詵)이 땅의 기운을 보완하기 위하여 사시사철 푸른 동백나무를 심은 것에서 유래한다고 전합니다.

- 길 위에 떨어진 동백꽃

절터로 가는 도중 길 위에 간간이 동백꽃이 떨어져 있어...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 절터 주위 동백나무 숲

절터 주위는 온통 동백나무 숲입니다.

- 옥룡사지

옥룡사(玉龍寺)는 통일신라시대 호남의 대표적인 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절은 도선이 주석하기 전에 이미 창건되었고, 그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습니다. 의종 4년(1150년)에 세워진 도선의 증성혜등탑비(證聖慧燈塔碑)와 광종 9년(958년)에 세워진 동진대사(洞眞大師)의 보운탑비(寶雲塔碑)와 부도가 있었습니다.

<옥룡사 선각국사 증성혜등탑비문(玉龍寺 先覺國師 證聖慧燈塔碑文)>에 '광양현(曠陽縣) 백계산(白鷄山)에 옛 절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옥룡사(玉龍寺)이다. 스님께서 유력(遊歷)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그 경치가 유승(幽勝)함을 좋아하여 당우(堂宇)를 개수하고 시원하게 여겨 이곳에서 정진하다가 임종(臨終)할 곳으로 뜻을 굳히고 연좌(宴坐)하여 망언(妄言)하기를 무려 35년 동안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 연못

절터 입구 쪽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절터는 큰 연못이었다고 합니다. 이 연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이에 도선이 용을 몰아내었는데, 백룡(白龍)만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에 지팡이로 눈을 멀게 하고 연못 물길을 끊어 쫓아낸 뒤 숯으로 연못을 메워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 옥룡사지

도선은 흥덕왕 2년(827년)에 태어나 효공왕 2년(898년)에 입적하였습니다. 입적할 때까지 35년간 이곳에 주석하였습니다. 그는 풍수지리설의 대가이자 밀교승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영암 구림(鳩林)에서 태어나 15세가 되자 월유산 화엄사에서 머리를 깎고 수행하다 문성왕 8년(846년) 곡성 태안사의 개조(開祖) 혜철(慧徹)로부터 배웠으며, 23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운봉산과 태백산을 비롯한 전국의 명산을 찾아 수행하며 신기한 자취를 많이 남겼으며, 37세부터 이곳에 와서 이전의 절을 중창하고 주석하다 입적하였습니다.

- 건물터

절은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이 파괴되었고, 조선 말에 폐사되었습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절터에 있던 부도와 부도비도 없어졌습니다.

- 석탑재와 석주

절터 한쪽에 석탑재가 석주(石柱)와 함께 있습니다.

- 석탑재

석탑재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석탑이 무너진 후 이곳에 옮겨졌을 것입니다.

- 석탑재

석탑재는 1층 지붕돌과 몸돌, 그리고 기단 면석 파편 등입니다. 

- 석탑재

몸돌은 면석에 모서리기둥이 있습니다. 지붕돌은 아랫면 층급받침이 3단입니다. 탑의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됩니다.

- 옥룡사지

절터 동쪽에 운암사로 넘어가는 숲길이 있습니다. 마주 보이는 오르막길이 있는 곳입니다.

- 굴

오르막길 옆에 작은 굴이 있습니다. 굴속에는 약간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 옥룡사지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절터 모습입니다.

- 비석거리로 내려가는 길

오르막길을 지나 아주 낮은 고개를 넘으면 운암사(雲岩寺)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약 30m쯤 가면 부도와 비석이 있었던 '비석거리'가 있습니다. 예전부터 오래된 비석이 있었다고 하여 이렇게 불립니다.

- 복원한 도선국사 부도비와 부도

비석거리는 옥룡사지 동쪽의 계곡 아랫부분이어서 원래는 경사진 곳이었으나, 부도와 부도비를 세우면서 지금처럼 편평한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부도 파편과 부도비 파편이 나왔는데, 나말여초(羅末麗初)의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파편들을 <범우고(梵宇攷)>에 기록된 도선국사(道詵國師)와 동진대사(洞眞大師)의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 부도와 부도비를 복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는 부도와 부도비를 이렇게 복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 운암사로 내려가는 길

비석거리를 지나 조금 내려가면 약사여래 대불이 있는 운암사가 있습니다.

- 운암사 대웅전

운암사 대웅전입니다.

- 본존불

대웅전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 길 위에 떨어진 동백꽃

운암사를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인적이 드문 길에는 간간이 들리는 바람 소리와 동박새 지저귀는 소리만이 깊은 정적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길 위에 하나둘씩 떨어진 동백꽃이 벗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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