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임천정 문화·유적

- 오방마을

의령 오방(五方)마을은 정곡면 소재지에서 신반 쪽으로 3km 남짓 올라간 곳에서 산골짜기로 조금 들어앉아 있습니다. 이곳은 유곡면과 경계를 긋는 달재 바로 밑입니다. 보통 정곡 '오뱅이'라 부릅니다.

오방(五方)이란 지명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하지만 선조 때 다섯 형제가 급제하여 '오방골' 또는 '오방동'이라 했다는 설도 있고, 5방위(五方位)의 오방(五方)으로 보기도 합니다.

- 감나무

오방마을을 지나 골짜기로 조금 들어가면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길가에 서 있습니다.

- 임천정

마을 입구에서 350m쯤 골짜기 쪽으로 들어간 곳에 임천정(臨川亭)이 있습니다.

- 임천정

임천정은 독립운동가이며 유학자인 수산(壽山) 이태식(李泰植, 1875~1951)이 1928년에 세운 그의 처소 겸 서당입니다. 이곳에서 의령지역의 역사지리서인 의춘지(宜春誌)를 1930년에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태식은 일제강점기 전국의 유림 대표 137명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독립청원서를 보낸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과 제2차 유림단(儒林團) 사건 등으로 약 7여 년 동안 일제의 수배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바친 애국지사입니다.

- 이전 모습

임천정의 이전 모습입니다.

담장은 측문이 없는 소박한 담장이고, 대문은 지면과 같은 높이에 설치된 아담한 사주문(四柱門)입니다. 그래서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 솟을대문

지금의 임천정은 담장과 대문 등이 새로 단장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다소 권위적인 솟을대문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건물을 좀 더 위엄있게 보이기 위해서였겠지요. 그러나 이전의 소박함을 잃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동선도 끊겨 조금 아쉽습니다.

- 솟을대문

솟을대문을 지나... 이곳 대청 앞에 서서 잠시 바깥쪽을 바라봅니다. 솟을대문 너머로 나지막한 산이 앞을 가리고 있습니다.

- 임천정

임천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입니다.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1칸씩의 온돌방이 있고, 그 옆에 각각 1칸 마루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는 'ㄷ'자 형태의 구조입니다.

- 현판

대청마루 뒷벽 위쪽에 '임천정'(臨川亭)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에는 공자칠십육대손(孔子七十六代孫) 공영욱(孔令煜)이 썼다고 적혀 있습니다.

- 임천정

1칸 온돌방도 바라보고...

- 임천정

1칸 온돌방 앞쪽의 1칸 마루도 바라봅니다.

- 임천정

눈길을 돌리면 양옆 쪽 담장에 측문이 있습니다.

- 임천정

뒤쪽으로도 돌아가 봅니다.

- 임천정 앞쪽 풍경

임천정을 나와 잠시 멈춰서서 앞을 바라봅니다. 겨울바람은 차고, 땅에는 진눈깨비가 얼어붙었습니다. 덩달아 마음도 얼어붙습니다.

덧글

  • 팬저 2021/01/13 22:35 # 답글

    소박한 문이 솟을 대문으로 하니 맛이 안사네요. 예전 사진이 있어서 비교가 되니 좋네요.
  • 하늘사랑 2021/01/14 07:57 #

    근래에 보수하면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