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학사루 느티나무와 목현리 구송 문화·유적

- 학사루

함양(咸陽) 학사루(學士樓)는 함양군청 정문 앞쪽 도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 누각입니다. 원래는 옛 동헌 자리인 함양초등학교 뒤뜰에 있는데, 1978년에 지금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학사루라는 이름은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함양태수(咸陽太守)로 있을 때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함양현감(咸陽縣監)으로 있을 때 이곳에 걸려 있던 유자광(柳子光)의 시판(詩板)을 떼어내게 했습니다. 이 일로 유자광의 원한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종직이 죽고 6년이 지나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는데, 예전의 그 일이 불씨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학사루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왜구의 노략질에 의하여 관아와 함께 불탔으며, 조선 숙종 18년(1692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학사루 느티나무

함양군청 바로 옆에 함양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은 옛 동헌 자리입니다. 이곳에 키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학사루 느티나무입니다.

- 학사루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나무 높이는 22m 정도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7.3m 정도입니다.

- 밑동

우람한 나무 밑동 모습입니다.

- 학사루 느티나무

김종직이 함양현감으로 있을 때 마흔이 넘어 얻은 다섯 살배기 어린 아들을 홍역으로 잃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심었다고 전합니다.

김종직은 1475년에 함양현감을 마치고 떠나면서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아들을 그리며 이곳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아들 이름이 목아(木兒)였기에 천 년을 살 수 있는 느티나무를 심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그의 애절한 마음을 알 수 있는 시가 <점필재집(佔畢齋集)>에 전합니다.

내 사랑 뿌리치고 어찌 그리도 빨리 가느냐 
다섯 해 생애가 번갯불 같구나
어머님은 손자를 부르고 아내는 자식을 부르니 
지금 이 순간 천지가 끝없이 아득하구나

- 목현리 구송

학사루 느티나무를 떠나 남쪽으로 한참 내려와 지리산 북쪽 자락의 높은 고갯길을 구불구불 넘으면 휴천면 목현(木峴)마을에 닿습니다. 목현(木峴)이란 지명은 이곳이 나무골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이곳은 휴천면 소재지로, 면사무소와 파출소가 있습니다. 목현마을은 조선 전기의 문필가인 금재(琴齋) 강한(姜漢, 1454~?)이 살았고, 그 뒤 중종 때 죽산박씨(竹山朴氏)와 선조 때 단양우씨(丹陽禹氏)와 진양정씨晉陽鄭氏)가 차례로 들어와 지금도 큰 성(姓)을 이루고 있습니다.

- 목현리 구송

이곳 서주천(西州川) 냇가에 화산(華山) 정대영(鄭大永, 1838~1903)이 뜻있는 젊은이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장소로 가꾼 구송대(九松臺)가 있습니다. 

이곳에 구송(九松)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높이가 약 12m이며, 지면부 둘레는 3.5m입니다. 구송이란 이름은 밑동에서부터 줄기가 9개로 갈라져 자란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 나뭇가지

원래 있었던 9개 나뭇가지 가운데 2개가 꺾여 없어지고, 지금은 7개만 남았습니다.

- 나뭇가지

남아 있는 나뭇가지는 사방으로 멋있게 뻗어 있습니다. 

- 목현리 구송

구송은 반송(盤松)입니다. 반송은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로, 생김새가 쟁반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나무 나이는 이곳 안내판에 300년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산정선생실기(華山鄭先生實記)>에 따르면 화산(華山) 정대영(鄭大永)이 심었다고 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나무 나이는 그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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