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장군의 마지막 거처, 창녕 망우정 문화·유적

- 망우정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한적한 마을 입구의 낮은 언덕에 망우정(忘憂亭)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마지막을 보낸 곳입니다.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은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32년(1599년)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을 때 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600년에 지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되었습니다. 1602년에 유배에서 풀려난 후 비슬산에 머물다가 영산(靈山) 낙동강 변에 망우정(忘憂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 유허비 비각

망우정의 유허비 비각입니다.

- 유허비

비각 안의 유허비입니다. 높이는 180cm, 너비는 70cm입니다.

곽재우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령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함안, 영산, 창녕 등지에서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고을 유림(儒林) 조언성, 이기성, 신영복, 신계동 4명이 뜻을 모아 이 유허비를 세웠습니다.

- 유허비

유허비 비신에 '충익공 망우 곽선생 유허비'(忠翼公 忘憂 郭先生 遺墟碑)라고 쓰여 있습니다. 유허비는 '숭정기원후3기유4월'(崇禎紀元後三己酉四月)이라고 적힌 비의 기록으로 보아 정조 13년(1789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 유허비 귀부

유허비 귀부입니다.

- 망우정 언덕

이곳 망우정을 호위하듯 느티나무 한 그루가 언덕 위에 서 있습니다.

- 망우정

이곳 언덕에 서서 망우정을 내려다봅니다. <망우선생문집(忘憂先生文集)>에 실린 그의 한시(漢詩)가 떠오릅니다. 망우정의 처음 모습과 당시 그의 심정을 읊은 시입니다.

처음 창암강사를 얽고 (初構滄巖江舍)

땅 파고 바위 쪼니 계단 절로 이뤄지네 (斥土治巖階自成)
층층이 가파른 길 위태롭게 기울었네 (層層如削路危傾)
여기에 울타리 없다 말하지 말게 (莫道此間無外護)
장삼이사 누구나 밝은 달을 보아야지 (李三蘇百翫空明)

- 대문

망우정 대문을 들어섭니다.

- 망우정

망우정은 3칸짜리 팔작지붕 기와집입니다.

곽재우 장군은 죽기 전에 외손녀사위 되는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이도순(李道純)에게 망우정을 물려주었습니다. 그 후로 여현정(與賢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여현정'이란 이름은 '곽재우가 어진 이에게 물려준 정자'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72년에 벽진이씨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1979년에 창녕군에 의해 전면 보수되었습니다.

- 현판

망우정에 걸린 현판입니다.

망우정(忘憂亭)이란 이름은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뜻으로 붙여졌습니다. 곽재우 장군의 호 '망우당'(忘憂堂)도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 담장

망우정 담장 너머 대나무숲과 낙동강이 있습니다. 담장 너머를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곽재우 장군의 말처럼, 그리고 그의 한시(漢詩)처럼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가 정자에서 우연히 읊다 ( 江舍偶吟) 

아래는 장강이고 위에는 산인데 (下有長江上有山) 
망우정 한 칸이 그 사이에 있구나 (忘憂一舍在其間)
근심 잊은 신선이 근심 잊고 누웠으니 (忘憂仙子忘憂臥)
밝은 달 맑은 바람 상대하여 한가롭고 한가롭네 (明月淸風相對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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