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주천 석장승과 그 옆 시혜비 문화·유적

- 주천 석장승 주변

남원 주천면 호기리의 넓은 들 한가운데에 신기(新基)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1607년경부터 모양씨라는 사람이 터전을 찾아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新基)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 후 공씨(孔氏), 유씨(柳氏), 노씨(盧氏) 등이 차례로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는데, 주위의 들이 넓고 기름지며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어려움이 없이 마을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주천 석장승

이곳 마을 북쪽 원천천 가에 장승이 있습니다. 주천 석장승입니다.

- 부분

장승은 머리에 벙거지 혹은 패랭이 같은 모자를 썼고, 목 없이 얼굴이 가슴에 붙어 있습니다. 얼굴은 마치 원숭이 얼굴을 연상케 하는데, 전체적인 얼굴 윤곽은 소박하고 투박한 모습입니다.

눈은 퉁방울눈처럼 둥글고, 볼은 볼록하게 튀어나왔으며, 코는 주먹코로 큰 편입니다.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양 볼에 곤지를 찍은 듯 동그란 문양이 있으며, 입은 다물고 있습니다.

- 부분

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자세로 서 있습니다. 몸통에는 별다른 명문이 없습니다.

- 주천 석장승

장승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조선 정조 22년(1798년)에 김기수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 3일 만에 환생하였습니다. 그는 저승에서 이승으로 보내준 노인을 찾아 남원 곳곳을 헤매며 다니다가, 1850년경에 현몽으로 지금의 신기리에서 논 속에 묻혀 있던 미륵 석불(주천 석장승)을 발견하고 캐냈습니다. 이 미륵 석불이 바로 저승에서 본 그 노인임을 확인하고 크게 감사하며 매년 칠월칠석에 찾아와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뒤로도 자손들이 대어 이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자손들의 가세가 늘어 후대에 남원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 효열각과 시혜비

장승 바로 옆에 효열각(孝烈閣)과 땅에 쓰러진 시혜비(施惠碑)가 있습니다.

이곳 마을에서는 장승이 있는 곳을 '미륵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어떤 부인의 꿈에 미륵(실상은 장승)이 나타나 아들을 낳게 해주겠으니 집을 지어줄 것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자식을 낳은 후에 미륵의 집을 지어줘 미륵정이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집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고, 장승과 그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 시혜비

땅에 쓰러져 있는 시혜비입니다.

- 지붕돌

지붕돌은 소박한 모양입니다.

- 몸돌

몸돌에 '조씨부인순희시혜비'(趙氏夫人淳姬施惠碑)와 '경신사월일'(庚申四月日)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경신(庚申)은 1860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 받침돌

받침돌에는 옆면에 태극 문양이 예쁘게 새겨져 있습니다.

시혜비(施惠碑)는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베풀어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비 자신은 이렇게 땅에 쓰러져 있어도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내 버려져 있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