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처사의 처소, 밀양 삼은정 문화·유적

- 삼은정

여주 이씨(驪州李氏)는 본관인 여주보다 오히려 경주와 밀양에서 명문 집안으로서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주 양동마을이나 독락당과 같은 곳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밀양에서도 부북면 퇴로리에 있는 여주 이씨의 고택들은 번성했던 여주 이씨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퇴로리에 여주 이씨 종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택 담 밖에 떨어져 지은, 이를테면 별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세 곳 있습니다. 서고정사(西皐精舍), 천연정(天淵亭), 삼은정(三隱亭)입니다. 이 세 곳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세 아들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백미(白眉)는 삼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금송

번듯함보다는 호젓함을 즐긴다면 삼은정만큼 좋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밀양 사람들조차 이런 데가 있는 줄 잘 모를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만큼 이곳은 이제 잊힌 곳이 되어 찾는 사람이 드뭅니다.

삼은정 앞쪽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는 금송(金松)이 있습니다.

- 삼은정

최근에 퇴락한 이곳 건물들을 손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퇴락했던 모습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 삼은정

삼은정은 1904년에 여주 이씨의 후손인 이명구(李命九, 1852~1925)가 지었습니다.

'삼은'(三隱)에서 삼(三)은 나무, 물고기, 술을 뜻합니다. 그러니 '삼은정'(三隱亭)은 이 셋과 함께 숨어 지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동소남(董召南)과 도연명(陶淵明)처럼 살고 싶었던 은둔처사 이명구가 세속과 멀리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은정기(三隱亭記)>에 '삼은정' 이름에 대해 이명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적었습니다.

나는 재능이 성글고 학문이 없는 데다 성격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적어 이미 세상에 할 일이 없으니 장차 아침에 나무하고 저녁에 물에서 물고기 잡아 돌아와 섶나무를 태우고 물고기를 익혀서 술잔에 술을 따라 도도하게 취하니 은거의 낙은 이만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물고기 잡는데 숨고, 나무하는데 숨고, 술에 숨어 삼은(三隱)이 됩니다.

- 현판

건물 입구 처마 밑에 '삼은정'(三隱亭)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 현판

마루 안쪽에 '용재'(庸齋)라고 쓴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습니다. 용재(庸齋)는 이명구의 호이기도 합니다.

- 대왕송

세속을 멀리하며 나무, 물고기, 술과 함께 숨어지내던 이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사람이 떠난 앞뜰은 적막하고, 대왕송(大王松)이라 불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처연하게 서 있습니다.

- 삼은정

아무도 없는 이곳을 느긋하게 둘러봅니다.

- 삼은정

밤사이 내린 비로 땅은 젖었고... 축축하고 찬 공기가 가슴을 파고듭니다.

- 삼은정

뜰에는 연못과 다양한 나무들이 있습니다. 소나무, 향나무, 삼나무, 회양목, 비자나무 등등... 그래서 혹자는 이곳 뜰을 나무 백화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 삼은정

뒷담 쪽으로 돌아가 삼은정을 바라봅니다. 방에 딸린 문짝 하나와 뒤쪽 툇마루가 있습니다. 이것은 뒷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뒤뜰의 경치를 즐기기 위함이겠지요.

- 삼은정

<삼은정기(三隱亭記)>에 이곳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대체로 이 정자는 비록 기묘하고 빼어난 경관은 없어도 그윽하고 고요하며 상쾌함이 절로 한 구역을 이루었고, 뒤로는 높은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넓은 들을 임하고 있다. ... 서쪽 헌암 아래에는 서늘한 샘물이 있어 한여름에 마시면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고, 샘물 곁에 감나무 두세 그루를 심어 짙은 녹음이 뜰에 앉아서 더위를 피할 만하다.

세월이 흘러 지금 샘에는 두세 그루 감나무는 찾을 수 없고... 허리 굽은 향나무 한 그루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족(蛇足)

동소남(董召南)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학문뿐만 아니라 행실이 바른 선비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 그리고 가정의 화목을 제일로 여겼습니다.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직접 땔감을 해왔으며, 아내의 부엌일을 거들었고, 물고기를 직접 잡았습니다. 문장가 한유(韓愈)는 그런 동소남을 '나무꾼도 되고, 어부도 되고, 요리사도 되어 양친을 위안하니 부모님도 걱정치 아니하고 처자식도 원망치 않네'라고 칭송하였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