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운흥정과 하연비각 문화·유적

- 운흥정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의 접경에 지리산의 서쪽 봉우리인 만복대(萬福臺, 1,433m)가 있습니다. 이 산의 남서쪽에 산동분지(山東盆地)가 있는데, 그곳 용소계곡(龍沼溪谷)에 운흥정(雲興亭)이 있습니다.

운흥정이 있는 곳은 서시천(西施川)의 상류로, 산동분지의 물목에 해당합니다. 이곳은 사시사철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숲이 어우러져 풍광이 뛰어납니다. 따라서 예로부터 구례뿐만 아니라 남원을 비롯한 인근 곡성 지역 선비들이 즐겨 찾았습니다.

- 서시천

운흥정 앞을 흐르는 서시천입니다.

- 서시천

서시천을 가로질러 용운교가 놓여 있습니다. 운흥정 아래에 있다는 용소(龍沼)가 이 다리 아래 어디쯤일까 어림잡아 봅니다.

- 서시천

냇물은 이곳을 지나 흘러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 운흥정

운흥정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전퇴를 둔 팔작지붕 집입니다.

- 운흥정

운흥정은 1926년에 산동면 유지들이 시사계(詩社契)를 조직해 시회(詩會)를 여는 장소로 세워졌습니다.

- 현판

건물 정면에 '운흥정'(雲興亭)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초서체로 쓴 현판 글씨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썼습니다.

- 운흥정 내부

건물 내부에 기문(記文)과 시문(詩文) 등을 적은 현판들이 걸려 있습니다. 

1930년에 이도복이 쓴 '운흥정기'(雲興亭記)에 따르면, 산동면 출신의 정와(靖窩) 박해창(朴海昌, 1876∼1929)이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내려와 효도를 근본으로 가정을 다스리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시랑산에 모셔진 아버지의 묘를 관리하면서 산동 지역 선비들과 시문을 읊으며 망국의 한을 달랬습니다. 이러한 그의 뜻에 감화한 지역 선비들은 시사계(詩社契)를 결성하고 시회(詩會)를 통해 암흑기에 처해 있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그 울분을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 운흥정에서 바라본 하연비각

운흥정 맞은편에 비각이 있습니다. 하연비각(河演碑閣)입니다.

- 하연비각

비각에는 '경재비각'(敬齋碑閣)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경재'(敬齋)는 세종 때 전라감사를 지낸 하연(河演, 1376~1453)의 호입니다. 비각 내에는 하연이 꿈에 용을 보았다는 일화가 새겨진 하연유적비(河演遺跡碑)가 있습니다. 

하연유적비는 조선 순조 11년(1811년)에 '경재 하상공 석애시 이각비'(敬齋 河相公 石崖詩 移刻碑)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습니다. 비의 내용은 세종 3년(1421년)에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하연이 남원부 중방현사에서 잠을 자는 사이 꿈에 나타난 노인과 잉어와 용에 관한 것입니다. 원래 바위 면에 새겨져 있던 시를 비석에 옮겨 새기면서 그 내력과 원운시(元韻詩)와 차운시(次韻詩)를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