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능지탑과 석불 문화·유적

- 능지탑

경주 낭산(狼山) 서쪽 자락에 있는 능지탑(陵只塔, 陵旨塔)입니다.

 능지탑을 능시탑(陵屍塔, 陵示塔), 연화탑(蓮華塔)이라고도 합니다. <동경잡기> 명동조(名同條)에 능지라는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능지탑이란 이름은 능지마을에 있는 탑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 예전의 능지탑

예전의 능지탑입니다.

당시 능지탑은 한 변이 5∼6m 되는 방형 평면이었고, 높이 3∼4m 되는 고분 모양으로 솟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꽃잎이 새겨진 커다란 판석들이 중첩되어 무너진 채 있었으며, 신라 왕릉 호석에서 볼 수 있는 십이지상도 있었습니다.

능지탑은 일찍이 파손되어 방치되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도부설공사를 하면서 필요한 석재를 능지탑 상부를 헐어서 반출하였다고 전합니다.

- 발굴조사 당시 소조불 파편

능지탑지(陵只塔址)는 1969년부터 1975년까지 4차례에 걸쳐서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발굴조사 때 능지탑 서쪽 감실에서 큼직한 소조불 좌상(塑造佛坐像)이 상반신이 결실된 채 하반신만 출토되었습니다. 발굴조사 후 능지탑지를 문무왕의 시신을 화장한 다비처(茶毘處)로, 능지탑을 탑묘(塔廟)로 추정하였습니다.

- 도리사 석탑

능지탑의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요?

지금으로서는 그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능지탑은 선산 도리사 석탑과 비슷합니다.

- 석불

능지탑지에서 다수의 소형 석불이 출토되었습니다. 위 석불은 30여 점의 소형 석불 가운데 불두와 불신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유일한 석불입니다.

석불이 무른 재질의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마모가 심합니다. 그리고 조각 수법에 있어 정교함이 떨어집니다. 조성 시기는 고려 시대라고 하며, 양주 회암사지 출토 불상과 비슷해 조선 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 불두

능지탑지에서 출토된 불두(佛頭)입니다. 재료로 응회암 등 비교적 가벼운 돌이 사용되었습니다.

불두는 넓적한 얼굴과 이목구비를 토속적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입니다. 일부 불두는 나발을 굵게 표현하였고, 눈은 옆으로 가늘게 찢어지듯 길쭉하게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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