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였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가 그린 <아담과 이브>입니다.
자신의 유일한 유화인 이 그림은 아담과 이브를 최초로 인체비례에 맞게 그린 뛰어난 그림입니다. 물론 아담과 이브는 오랫동안 화가들이 즐겨 다루었던 소재이다 보니 뒤러 외에도 다른 여러 화가들이 아담과 이브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다른 화가도 뒤러만큼 완벽한 아담과 이브를 그리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들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표정은 마치 유혹을 즐기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또한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은 몸을 나뭇잎으로 가리기는 했으나 성경을 나타내는 천사나 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도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벌거벗은 몸을 너무나 당당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두운 배경 속에 아담과 이브가 들고 있는 사과 열매와 가지, 그리고 잎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뒤러가 이 작품에서 이브의 원죄를 표현하지 않은 것은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르네상스의 정신에 충실한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도 르네상스 정신이 북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성경과 신에 대한 해석이 중세와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에서 아담과 이브는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니라 원죄에서 벗어난 현실 속의 인물처럼 표현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뒤러의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신을 지배하고 개척한다는 르네상스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 그림이라고 하여 모두 뒤러처럼 그린 것은 아닙니다. 종교의 절대적인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인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 가운데서도 이 그림은 인간중심 사상에 역점을 둔 뛰어난 작품입니다.
다음 그림들은 뒤러 이후 다른 화가들이 그린 아담과 이브입니다.

한스 발둥 그린 역시 뒤러처럼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독일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린 아담과 이브는 뒤러가 그린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왠지 신화 속에 나오는 제우스나 비너스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늘씬한 팔등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일반적인 종교화와는 달리 생생한 건강미를 느낍니다.

뒤러가 아담과 이브를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다면, 한스 발둥 그린은 훨씬 더 에로틱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순수함보다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 아담과 이브 그림에 볼 수 있는 국부를 가린 올리브 나뭇잎마저도 그리지 않은 위의 그림에선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린 시기가 1531년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현대적인 느낌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위 그림을 그린 루카스 크라나하 역시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독일 화가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활동한 독일 화가들이 특히 아담과 이브라는 소재를 좋아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뛰어난 작품도 많이 남겼고요.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화가들이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 말고는 벗은 모습의 인물을 그리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벗은 인간의 모습을 아무런 제약 없이 그리기에 아담과 이브만큼 좋은 소재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아담과 이브 그림입니다.
우선 앞선 독일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 하고는 느낌부터가 완전히 다르죠. 특별한 배경 없이 인물 위주로 그린 앞의 그림들과는 달리 풍부해진 배경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피터 폴 루벤스는 바로코 시대에 활동한 네덜란드 화가로, 한눈에 보아도 위의 그림들보다는 훨씬 더 화려하고 역동적입니다. 이는 화려한 색채와 역동감이 넘치는 그의 그림이 갖는 전반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또 다른 아담과 이브 그림입니다.
이 그림과 거의 같은 그림으로 티치아노가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같은 그림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인데, 자세히 보면 그림 속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처럼 이 두 그림을 거의 같은 그림으로 착각하는 것은 루벤스가 티치아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모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벤스는 똑같이 그리진 않았고 그림 군데군데 조금씩 다르게 그렸습니다. 그러니 이 두 그림을 비교하면서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이제 시대를 훌쩍 건너뛰어 20세기 초로 넘어왔습니다. 폴 고갱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상주의 프랑스 화가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시기가 그가 죽기 불과 몇 해 전인 1902년이라고 하니, 타히티 섬에 있다가 도미니카 섬으로 옮겼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고갱을 그토록 매혹시켰던 타히티 섬은 당시 문명사회와는 동떨어져 자연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런 타히티 섬은 문명에 싫증을 느낀 고갱에겐 어쩌면 에덴동산과 같은 곳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고갱의 <아담과 이브>는 아예 타히티 섬에 있는 남녀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앞에서 본 어떤 아담과 이브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역시 고갱이 생각했던 낙원은 바로 타히티 섬 그 자체였던 모양입니다.

마지막으로 클림트의 미완성작인 <아담과 이브>입니다.
이 그림은 클림트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렸던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림 속의 아담은 다소 몽롱한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 아랫부분에 보이는 아네모네 꽃과 죽은 표범 가죽은 에덴동산을 나름대로 상징한 것이겠죠. 잠이 든 모습으로 그려진 아담에 비해 깨어있는 이브는 생기가 넘치는 모습입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흔히 보듯 이런 이브의 모습은 욕망과 함께 파괴의 위험성을 상징하는 팜므파탈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담과 이브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려내는가 하는 것은 시대와 화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우리 인간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아담과 이브가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아담과 이브를 그리는 화가들이 그림의 주제로써 느끼는 매력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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