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 미술사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으로 회화나 조각에 널리 등장하는 비너스는 그리스신화 가운데 나오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와 같은,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베누스(Venus)를 영어식으로 부른 것입니다. 아프로디테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아폴로스(Aphros)에서 왔습니다. 즉 아프로디테(Aphrodite)는 '거품에서 태어난 여자'라는 뜻입니다.
아프로디테는 셈(sem)족의 풍요와 다산 그리고 전쟁의 여신인 아스타르테(Astarte)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케네 시대에 키프로스(Kypros)섬으로 전래하면서 아프로디테로 되었다고 합니다. 아프로디테의 별명으로 키프리스(Kypris)라 하는게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며, 가끔 아나디오메네(Anadyomen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아프로디테가 로마신화 속에 편입되면서 베누스(Venus)라고 하였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에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거세된 생식기가 바다 거품과 어우러져 태어났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제우스와 바다의 정령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설에서의 공통한 점은 비너스가 바다 거품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움과 사랑이란 것이 한순간 화사하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져버리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는 걸 의미하는, 어찌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서양회화에서 여자의 육체가 갖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비너스만큼 적당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예로부터 벌거벗은 여자의 육체는 예술가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을 일깨우는 좋은 촉매제였습니다. 그러니 이런 벌거벗은 아름다운 육체의 비너스는 끊임없이 예술가들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겠지만 서양 미술사에는 수많은 비너스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는 단순히 신화 속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지만, 비너스를 빌어 아름다움의 상징을 형상화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작품 속의 비너스는 그저 아름다운 여인인 셈입니다.
르네상스시대는 중세기 기독교의 금욕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망이 크게 분출되었던 시대였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억눌려 있던 성 의식이 활발했던 시기였죠.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서양미술에서의 비너스는 인간의 성욕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으로 되었습니다. 따라서 비너스는 관능미의 대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중기의 보티첼리의 명작인 <비너스의 탄생>은 바닷물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조개 껍질을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인도되기 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 한가운데 수줍은 자세로 서 있는 비너스에서 관능미보다 청순한 아름다움을 더 느끼게 됩니다.

이 그림은 티치아노가 그린 <바다에서 올라온 비너스>라는 작품입니다.
이제 막 바다에서 올라와 젖은 머리카락으로부터 물을 짜내는 모습의 비너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 구석을 보면 조개 껍질이 보입니다. 이 그림 속의 여인이 비너스임을 나타내고자 티치아노는 이렇게 조개 껍질을 조그맣게나마 그려넣었습니다. 보티첼로의 비너스 그림에선 이보다 훨씬 더 큰 조개 껍질을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림은 보티첼로의 비너스보다는 조금 후에 그린 조르조네의 <잠든 비너스>입니다. 이 그림은 조르조네가 일찍 죽어 미완성인 것을 티치아노가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보티첼로의 비너스와는 달리 이 그림에선 비너스를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그렸습니다. 서 있는 누드와 앉아 있는 누드에 비하여 비스듬히 누운 누드는 훨씬 더 에로틱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조르조네의 비너스는 보티첼로의 비너스보다 훨씬 더 관능적인 자세로 그려져 있으나,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잠든 모습에서 여전히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처럼 비너스를 잠든 모습으로 그린 화가가 조르조네 이전에는 없었으므로 미술사학자들은 조르조네가 16세기에 새로운 신화적 주제를 창조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편안한 자세로 누운 비너스는 후에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도 나타납니다.

자, 이제 티치아노가 그린 비너스를 한번 보시죠.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작품입니다.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탈리아 우르비노 공국의 귀도발도 델라 로베레(Guidubaldo della Rovere)가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 속의 비너스에서는 청순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관능미만 넘칩니다. 아마도 이는 이 그림이 상류사회 귀족들의 관능적 쾌락을 위해 그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은 신화 속의 비너스가 아니라 어쩌면 당시 자신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이 여인은 밝은 색 침대 위에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비너스를 상징하는 장미를 들고 있고, 왼손으로는 자신의 음부를 살며시 가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뒤로 내려진 천은 화면을 반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하인들이 그녀의 옷을 정리하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를 비롯해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마네의 <올랭피아>와 같은 그림에도 영향을 끼침으로써 근대 누드화의 원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티치아노의 <바다에서 올라온 비너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 근대 서양화가인 김관호가 1916년에 그린 <해질녘>이란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이 그림은 대동강과 능라도를 배경으로 하여 벌거벗은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라고 합니다. 비록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 가운데 오른쪽 여인의 모습을 보면 비록 뒷모습이지만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닮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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