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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정료대

- 옥산서원옥산서원(玉山書院)은 회재 이언적이 지냈던 독락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 서원은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서원은 앞쪽에 강학하는 장소를 두고, 뒤쪽에 사당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런 서원 건물의 엄정한 배치를 보는 재미도 좋지만, 석봉...

단석산의 이름없는 마애불 찾아가기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건천 방내리 일대경주 단석산에는 마애불이 셋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가장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방내리 마애불도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이름조차 제대로 없는 마애불입니다. 단석산 북쪽 능선에 있습니다. 이 이름없는 마애불을 찾아 나섭니다.천주암 아래에서 시작되는 산길을 따...

경주 독서당

- 경주 독서당통일신라시대 말에 살았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은 높은 학문과 문장력을 지녔으나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자기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깊은 좌절을 안은 채 살다 갔습니다. 그가 태어난 경주에는 그와 관련된 곳이 두 곳 있습니다. 독서당(讀書堂)과 상서장(上書莊)이 그곳입니다.독서당은 낭산(狼山) 서쪽 자락에 있습니다....

성덕왕릉의 원숭이상

- 성덕왕릉의 원숭이상성덕왕릉의 십이지상은 여러모로 눈길을 끕니다.다른 신라 왕릉의 십이지상은 모두 부조(浮彫, 돋을새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덕왕릉의 십이지상은 환조(丸彫, 둥글새김)로 되어 있습니다. 환조는 부조보다 만드는 데 힘은 들지만 뛰어난 입체감으로 훨씬 사실적입니다.- 원숭이상신라 왕릉에서 성덕왕릉의 십이지상은 환조로 된 유일한 것이...

성덕왕릉의 석인상

- 성덕왕릉 석인상신라 왕릉 석인상의 진수를 보는 듯한 석인상 1쌍이 성덕왕릉에 있습니다. 하나는 완전하지만, 다른 하나는 깨어져 일부만 남았습니다.석인상은 괘릉 문인상으로 알려진 석인상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머리에 관을 쓰고, 관복을 입고, 소맷자락 속에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습니다. 그래서 문인상으로 알려졌습니다.그러나 이 석인상이 무인상이라는...

경주 신라 왕릉의 마무리 답사

- 신무왕릉 앞의 감나무박혁거세로부터 경애왕에 이르는 55명의 신라 왕(무덤이 경기도 연천에 있는 마지막 왕 경순왕은 제외) 가운데 화장하여 뼈를 뿌린 몇몇 왕을 제외한 대부분이 경주에 무덤을 섰습니다. 그러나 신라가 망하고 난 후 천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신라 왕릉은 이렇게 저렇게 훼손되었고, 거기에다 잘못 전승되어 무덤의 주인이 바뀌기도 했...

전 민애왕릉의 십이지상

- 전 민애왕릉의 십이지상전 민애왕릉에서 출토된 십이지상입니다.이 십이지상은 전 민애왕릉의 수리공사 때(1984년) 무덤의 둘레돌을 받치고 있는 지주석 바깥을 따라서 판 작은 구덩이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이들 십이지상은 쥐상, 닭상, 돼지상으로, 모두 무덤을 등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전 민애왕릉의 십이지상이들 십이지상은 곱돌로 만들어졌으며, 다른 무덤...

경주 구황동 목탑터

- 경주 구황동 목탑터경주IC에서 보문단지로 가는 도로 바로 옆에 '구황동 제1사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절터의 유일한 흔적이라고 할 목탑터가 있습니다.이곳은 낭산 북서쪽 종단 구릉부에 해당하며, 부근에는 미탄사터 삼층석탑과 독서당(讀書堂)이 있습니다. 미탄사터 삼층석탑은 북서쪽으로 300m쯤 되는 곳에 있고, 독서당은 남동쪽으로 140m쯤 되는 곳에...

경주 풍력발전소

- 경주 풍력발전소불국사에서 장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는 길고 가파릅니다. 이곳 고갯마루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조항산 능선에 경주 풍력발전소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여러 기의 풍력발전기가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 이들 풍력발전기와 함께 주위 경관도 참 멋집니다.- 전망대 주차장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의 모습

구정동 방형분의 모서리기둥

- 구정동 방형분의 모서리기둥경주박물관에 있는 돌기둥입니다. 이 돌기둥은 구정동 방형분에 있던 것입니다. 1977년에 구정동 방형분 주위를 정비하면서 도랑을 낼 때 출토되었습니다. 그때 이 돌기둥의 용도를 알 수 없어 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조사 결과 무덤의 모서리기둥으로 밝혀졌습니다.- 모서리기둥의 사자상이 돌기둥에는 직각으로 만나는 2면에 무인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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