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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의 보석, 관가정(觀稼亭)

- 관가정 사랑채관가정(觀稼亭)은 양동마을의 왼편 전망이 높은 서향받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집 이름은 '농사짓는 풍경을 보는 정자'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양동마을의 집 이름은 관념적인 이름이 많은 다른 지역의 양반집들과는 달리 다분히 전원적인 냄새가 강합니다. 예를 들면 큰 향나무가 있으면 '향단(香檀)', 소나무가 있으면 '송첨(松簷)' 등으로 말입...

영산 신씨고가

- 정비되기 이전의 영산 신씨고가 모습. © 문화재청경남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뜻밖에 영산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영산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고장이 되었습니다. 지금 영산은 창녕군에 속해있는 면 단위의 마을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창녕과 맞먹을 만큼 컸던 적도 있었습니다.조선시대에는 창녕과 영산에 각각 현감을 두었...

운현궁(雲峴宮)

- 노안당운현궁(雲峴宮)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가이자 고종이 출생하여 12세까지 성장한 곳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던 당시(1863~1873년)에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아재당(我在堂)과 안채인 노락당(老樂堂)·이로당(二老堂),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조상인 은신군과 남연군의 사당 등을 새로이 지었습니다. 또한 솟을대문 외에 창덕궁과 가깝게 왕래할 수...

숭렬당(崇烈堂)

- 숭렬당(崇烈堂) 전경영천 시내 큰 길가에 있는 특이한 모습의 숭렬당은 조선 세종 때 여진을 토벌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여 경상도 도절제사와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에 이른 위양공(威讓公) 이순몽(李順蒙) 장군의 주택입니다. 이 건물은 세종 15년(1433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조선 초의 일반 건축으로는 보물로 지정될 만큼 매우 귀하다고 할 수 있습...

호수종택(湖垂宗宅)

- 호수종택 전경경북 영천시는 보수적인 영남지역의 문화를 비교적 잘 간직한 도시입니다. 그런 연유로 조선시대 한옥이 여러 곳에 남아 있어 눈길을 끕니다. 민가 건물로는 매산종택이나 숭렬당과 같은 건물이 먼저 떠오르지만, 호수종택 또한 여러 가지 매력을 지닌 건물입니다.호수종택(湖叟宗宅)은 처음 얼핏 보면 매산종택의 겉모습과 비슷합니다. 마치 성벽처럼 당...

한개마을의 교리댁(校理宅)

- 교리댁 고샅길한개마을은 성주군 월항면에 있습니다. 마을 동쪽으로는 영취산(靈鷲山)이 있고, 서쪽으로는 이천과 백천이 합류하고 있어, 성주에서는 천창(泉倉)과 함께 길지(吉地)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이 마을은 1450년에 성산 이씨로 진주목사인 이우(李友)가 입향(入鄕)하여 시작되었으며, 마을 앞에 큰 내(이천과 백천이 합류)가 있다 하여 大浦(큰...

한개마을의 북비고택(北扉古宅)

- 북비고택 앞 모습조선 세종 때에 이우가 처음 마을을 조성한 뒤로 약 500년의 내력을 이어온 한개마을에는 지금도 수 백년 된 고택이 여럿 있습니다. 교리댁, 북비고택, 월곡댁, 진사댁, 하회댁, 극와고택 등의 고택과 이러한 고택을 이어주는 고샅길에는 옛 향기가 물씬 풍기는 돌담이 길게 둘러쳐져 있습니다.그 중 북비고택(北扉古宅)은 한개마을의 '터줏대...

묵와고택

- 사랑채파리 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 1919년 유림들이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보낸 사건)에 참여하였던 윤중수의 생가인 묵와고택(默窩古宅)이 처음 지어진 것은 조선 중기인 인조 때 윤중수의 10대조인 윤사성에 의해서라고 전합니다. 그 뒤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세거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처음 지었을 때에는 터가 600...

인흥마을

- 인흥마을의 흙돌담길고가인 경우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으면 같은 집인데도 훈기가 돌고 윤기가 흘러 집이 돋보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가치 있는 훌륭한 집이라도 그곳에 사람의 손길이 끊어지면 찬바람이 휘감기고 허망함이 배어나와 집의 품격이 떨어지고 수명도 줄어듭니다. 인흥마을은 이런 의미에서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는 옛집들이 모여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

광거당(廣居堂)

- 광거당광거당(廣居堂)은 대구 달성에 있는 인흥마을이라고도 부르는 남평 문씨 세거지에 있는 한옥으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오른쪽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834년에 지어진 용호재(龍湖齋)를 허물고, 그 터에 후손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고 문중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는 재실로 지어졌으므로, 요즘의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입니다. 사실 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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