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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세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천 매향비

- 사천 매향비 전경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바닷가 마을의 갯벌에 향나무를 묻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매향(埋香) 혹은 침향(沈香)이라고 하는 의식이었습니다.좋은 향나무를 골라 다듬어 펄 속에 묻어두면, 천 년이 지난 후에 향 가운데 가장 귀한 침향(沈香)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주위에 있는 흔한 것이라도 마음을 모은 소망과 세월의 무게가 쌓이면 ...

임신서기석은 화랑들의 맹세서인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신라 612년 추정, 경주 석장동 출토, 국립경주박물관국립경주박물관에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 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대충 지나가며 보다 보면  제법 큼직한 냇돌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유물은 결코 평범한 냇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냇돌의 표면에 글자가 씌어 있기 때문입니다.이 유물의 이름이 무엇이냐...

이차돈 순교의 안과 밖

- 이차돈 순교비신라에서 불교는 당시 사람들에겐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교가 신라에서 환영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신라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차돈의 순교'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은 이후입니다. 그만큼 이차돈의 순교는 신라 불교에 있어 전환점이 된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법흥왕 14년(527년)...

最古의 신라비 '중성리 신라비'

- 중성리 신라비 (사진 출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올해 5월 11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중성리의 한 도로공사 현장에서 주민 김헌도 씨는 길가에 치워진 커다란 돌을 발견했습니다. 김 씨는 돌의 한쪽 면이 평평해 집에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곧이어 자신의 집으로 돌을 옮겼는데, 다음 날 비가 내리자 돌의 표면에서 한자가 보였습니다. 물로...

창녕 탑금당 치성문기비

- 창녕 탑금당 치성문기비의 전경창녕에 있는 탑금당 치성문기비(塔金堂 治成文記碑)는 그 이름이 마치 난해한 난수표처럼 처음 들으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어림잡기가 어렵습니다. 이 이름은 탑과 금당을 세우거니 고친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란 걸 의미하는데, 좀 더 알기 쉽게 이름을 붙였더라도 좋았을 것입니다.이 비석은 비석에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통일...

영천 청제비(菁堤碑)

- 영천 청제비영천시 도남동 도남농공단지 뒤편 구석에 경부고속도로로 말미암아 두 동강이가 난 저수지가 하나 있습니다. '청못'으로 불리는 이 저수지는 그냥 보아선 그저 평범한 못에 불과해 보이지만, 1,470여 년 전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못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제비 비각이 저수지 곁에는 붉은 창살로 사...

충주 청룡사터

- 약간 경사진 터에 보각국사 부도비와 부도, 사자석등이 한 줄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숲 속에 푹 안겨 있어 아늑하기 그지없습니다.청룡사터는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뒷산인 청계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옛 절터입니다. 쓸쓸하고 적막한 옛 절터를 찾아나서는 일은 집착과 욕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습니다. 청룡사터로 가는 길은 도...

하위지 선생 유허비

▲ 하위지 선생 유허비가 있는 비각 전경경북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단계천 근처에는 조선 세조 때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이개, 유성원과 함께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단계 하위지(丹溪 河緯地, 1412-1456)의 굳은 충정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유허비가 있습니다. 이 비석은 단층 기와집으로 된 비각(碑閣)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각의 주위는 장방...

냉수리 신라비

▲ 신광면사무소 마당에 있는 냉수리 신라비 전경포항 신광면사무소에 있는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는 1989년 4월 6일 냉수리 차평들 동쪽 이상운씨 소유 밭에서 밭갈이를 하던 중 평소 걸림돌이 되어온 것을 파헤쳐서 빨랫돌로 사용하려고 집으로 갖고와 물로 씻어보니 글자가 새겨져 있어 행정기관에 신고함으로써 발견되었습니다.영일 지역은 신라가 동해안으...

법광사터 석가불사리탑비

▲ 석가불사리탑비의 전경. 사리탑비 뒤에 보이는 석탑 부재는 현재의 법광사를 창건한 분의 오해로 인해 법광사터 삼층석탑이 한때 사층석탑으로 잘못 복원되었을 때 사용되었던 것입니다.법광사터 금당터의 뒷편 언덕에는 네모지게 흙돌담을 한 곳이 있습니다. 이 흙돌담 안쪽에는 삼층석탑과 함께 작은 비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삼층석탑의 중수내력을 기록하고 있는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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