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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천왕사지

- 당간지주얼핏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7번 국도 길가에 당간지주(幢竿支柱) 1쌍이 서 있습니다.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가 있는 곳입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9년(669년)에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침입하려고 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明朗法師)의 건의로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절을 세우고 ...

경주 사천왕사터의 서귀부

- 경주 사천왕사터의 서귀부경주 낭산(狼山) 정상에 선덕여왕릉이 있고, 그 바로 남쪽에 사천왕사터(四天王寺址)가 있습니다.사천왕사는 호국사찰입니다. 문무왕 9~10년(670~671년)에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침입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의 건의로 낭산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절을 세우고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였습니다. 이에 당나라 군사의 ...

사천왕사터 녹유신장벽전

- 녹유신장벽전 A2015년 9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출토유물보관동 전시실에서 '양지사석전(良志使錫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사천왕사터 녹유신장벽전(綠釉神將壁塼)입니다.이 녹유신장벽전은 양지 스님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서 목탑 기단부 배치되었는데, 한 면을 기준으로 중앙계단 왼쪽에 3개, 오른쪽에 3개...

철길에 두 동강 난 사천왕사터

- 사천왕사터 전경. 위쪽에 보이는 도로는 울산으로 가는 국도이고, 아래쪽에 보이는 철길이 동해남부선 철길입니다. 그리고 사천왕사터 앞으로 펼쳐진 들이 배반들입니다.사천왕사터는 경주 낭산의 서남쪽에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황량한 절터만 남았지만 신라 때는 대가람을 이루었습니다. 사천왕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당나라의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

사천왕사 특별전 전시유물들

- 거북머리, 사천왕사터 출토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사천왕사 특별전은 이곳 목탑터에서 발견된 녹유신장상이 주된 전시물이지만, 이 밖에도 사천왕사와 관련된 유물이라든지 양지 스님과 연관된 유물이 함께 전시되고 있습니다.우선 이 거북머리는 사천왕사터 서쪽 귀부의 머리 부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천왕사터에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귀부 하나씩이...

사천왕사 특별전에서 만난 사천왕사 녹유신장상

- 머리에 보관을 쓰고 악귀 위에 앉아 있는 수호신(A형)경주에 있는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녹유신장상은 이 땅의 고대 조각품 가운데 첫손에 꼽는 걸작품입니다. 신라 양지 스님이 호국 발원을 담아 녹색 유약 입힌 벽돌판(녹유전) 위에 만든 이 조각상은 꿈틀거리듯 생생한 조형감이 일품입니다. 갑옷 차림에 화살, 칼 등을 든 수호신들이 악귀를 짓밟고 불국토 ...

사천왕사터 녹유신장상의 미스터리

- 경주시에 있는 신라 고찰인 사천왕사터에서 1936년 출토된 하반신과 2006년에 출토된 상반신을 결합한 녹유신장상. (사진 출처: 국립경주박물관)경주 사천왕사 목탑터 탑 기단부에 있었던 녹유전 조각상은 아쉽게도 서울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등에 나누어져 보관되어 있어 그동안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이처럼 서로 반쪽이 ...

사천왕사터

▲ 사천왕사터 전경 (사진출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사천왕사는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당나라와 전쟁하던 신라가 문무왕 9년(670년)과 10년(671년)에 당나라 군사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의 건의로 낭산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절을 세우고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자 갑작스런 풍랑이 일어나 당나라 군사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고, 그 후 67...

사천왕사터의 사천왕상

-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채유사천왕상전(彩釉四天王像塼)삼국통일을 이룬 신라는 경주 낭산(狼山) 서쪽 기슭에 호국 사찰로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습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는 이 사천왕사터에서 부조틀로 찍어내어 표면에 갈색의 유약을 입힌 후 구운 사천왕상(혹은 팔부신중)이 새겨진 전(塼)돌이 출토되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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