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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천성진성

- 가덕도 천성진성(위치1)가덕도에 있는 천성진성(天城鎭城)은 남해안의 요충지였던 천성진에 설치된 방어시설입니다. 가덕도 천성진 부근은 대마도에서 부산ㆍ진해 쪽으로 진입하는 바닷길의 요충지로서, 예로부터 왜구가 침입하는 길목이었습니다. 고려 말부터 왜구의 침범이 잦아지자 조정은 이에 대한 대책에 부심했습니다. 조선시대 세조 때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서생포 왜성 2

- 서생포 왜성 본성의 추정도 (사진 출처: 팬저의 국방여행)서생포 왜성 본성의 추정도입니다. 먼저 이 추정도를 잘 기억해 주십시오.이제 앞글에 이어 산정부 소곽과 산정부 중심곽, 그리고 출격용 소곽에 대해 이어 가겠습니다.- 산정부 소곽 내에서 출입구 쪽으로 바라본 모습되형 출입구를 들어서면 산정부 소곽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제법 너릅니다. ...

서생포 왜성 1

- 바깥에서 본 내성 주출입구임진왜란 당시 울산은 왜군에게 경상도 동쪽 지역 최전선의 교두보로서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따라서 침략과 방어 목적으로 이곳에 왜성을 쌓았습니다. 울산에는 왜성이 두 개가 있었는데, 서생포 왜성과 울산 왜성입니다. 서생포 왜성은 진하해수욕장 뒤쪽에 있는 산에 쌓은 것이고, 울산 왜성은 학성공원에 쌓은 것입니다.임진왜란 초기 승...

주위 경치도 아름다운 거제 지세포성

- 거제 지세포성그동안 부산과 거제도는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었습니다. 바다로 해서 가는 길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이지만, 육지로 해서 가려면 진해, 마창대교, 고성, 통영을 거쳐 거제도로 들어가야 하니 절대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하지만, 거가대교가 개통되고 나서부터는 부산과 거제는 비싼 도로통행료만 아니라면 손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던 웅천왜성

- 웅천왜성웅천왜성은 180m 남짓 되는 남산 산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산기슭까지 돌로 쌓은 성입니다. 이 왜성은 그 규모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성해서 본거지로 삼았다고 하는 18개의 왜성 가운데서 울산 서생포 다음으로 크다고 합니다.이곳은 지형이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는 웅포만(熊浦灣)을 끼고 있어서, 왜군이 수백 척의 ...

왜성에 올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바라보다.

- 안골왜성의 본성무너져 내린 성터는 절터와 마찬가지로 초겨울이 제격입니다.이때가 되면 한여름 무성했던 풀들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그 무엇으로도 감추지 않은 자신의 속살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차가운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이곳은 더 쓸쓸한 느낌이 들게 되니, 이럴수록 적적한...

무덤터와 억새밭으로 변한 왜성

- 안골왜성의 지성웅천(熊川)에 있는 안골 동쪽 해발 100m의 산 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만든 성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성을 안골왜성(安骨倭城)이라 부릅니다. 산의 정상부를 깎아 평탄하게 만들어 둘레를 돌로 쌓아 본성을 만들었고, 본성 북쪽과 서쪽 두 곳에 지성(支城)을 따로 두었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바다에서 우리 수군에게 거듭 ...

김해 분산성

- 김해 분산성김해에 있는 산인 분산(盆山)은 서김해와 동김해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그 높이는 330m 정도 되니,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산 정상에 서면, 김해시내와 김해평야, 낙동강, 그리고 남해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조망이 뛰어납니다.그런 만큼 산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산의 ...

성벽은 흔적만 남았으나 송덕비는 여럿이네.

- 기장읍성기장읍은 부산의 북쪽 끝에 있는 변두리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기장읍성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더구나 그 위치까지 아는 사람은 더 드뭅니다.기장읍성은 옛 기장현의 읍성으로, 기장 시가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지역인 기장읍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있었습니다. 지금 기장읍성은 이곳이 ...

호남의 첫 번째 문, 풍남문

- 전주 풍남문전주 경기전에서 얼마 걸어가지 않으면 있는 풍남문(豊南門)은 지금은 도로 한가운데 있는 로터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주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풍남문이란 이름은 전주와는 그다지 연관이 있어 보이진 않은데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걸까요?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은 불과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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