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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영운리 돌장승

- 통영 영운리 돌장승조선시대 통영 미륵도에 서쪽으로는 당포진(唐浦鎭), 동쪽으로는 삼천진(三千鎭)이 있었습니다. 삼천진이 있었던 곳이 지금의 영운리(永運里)입니다.영운리는 영원한 행운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지명이라고 합니다. 이곳 마을은 일운, 이운, 수륙 마을로 되어 있습니다. 일운 마을 조금 못미처에 영운분교가 있고, 부근에 마을 표지석과 함께 돌...

곡성 율천리 돌장승

- 곡성 율천리 돌장승곡성 가곡리의 서남쪽에 율천리가 있습니다. 율천(栗川)의 원래 이름은 '샛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줄기찬 장대비에 밤나무에서 밤들이 떨어져 시내를 가득 채우며 흘러내려가 밤내울, 밤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옛날 이 마을에 부자가 많아서 '밥알이 내(川)를 넘쳐 흘렀다'하여 '밥내울'이라고 했다고도 합니다.이곳 마을...

곡성 가곡리 돌장승

- 곡성 가곡리 돌장승곡성 옥과는 피난처로 안성맞춤이라는 <정감록(鄭鑑錄)>의 말마따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그 남쪽에 인접한 오산도 옥과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오산 동쪽 끝의 가곡리 오층석탑을 찾아가다 보면, 마을과 대략 100m쯤 떨어진 가곡리 마을 입구에 돌장승 한 쌍이 있습니다. 길의 왼쪽에는 여자 돌장승이, 오른쪽에는 남자...

남근석을 닮은 남장사 돌장승

- 남장사 돌장승상주 남장사(南長寺)로 가다 보면, 일주문으로부터 600m쯤 떨어진 길가에 돌장승 하나가 제일 먼저 길손을 맞습니다. 그 모습이 창녕 관룡사나 나주 불회사의 돌장승에 견줄 만큼 해학적으로 생겼습니다.이 돌장승은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변함이 없습니다. 원래는 일주문에서 300m쯤 떨어진 길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옛길을 묵묵히 지키는 관룡사 돌장승

- 관룡사 돌장승이제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관룡사로 올라가는 옛길에 돌장승 1쌍이 서 있습니다. 이 길은 새로 차가 다니는 길이 나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오르내렸던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잊힌 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사람들의 발길로 반들대던 길도 이제는 군데군데 패인 채 있습니다. 비록 옛길은 이렇게 잊혀가지만, 옛길을 지키고 선 돌장승...

불회사 돌장승

- 불회사 돌장승우리 조상은 마을이나 절 입구에 장승을 세워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으로서 이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마을 어귀나 절 입구에 심심찮게 장승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장승이 많이 사라져 어쩌다 보일 뿐입니다. 나주 불회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 덕룡산 골짜기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운흥사 돌장승

- 상원주장군운흥사 돌장승은 나주시 다도면 암정리 운흥마을에서 운흥사로 들어가는 입구 들녘에 서 있습니다.이 돌장승은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지나다니는 길가 양쪽에 구부정한 몸을 하고 서서 누가 오나 누가 가나 지켜보는 것만 같습니다. 할아버지 장승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할머니 장승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순박함 그 자체로 좋은 당포마을 돌장승

- 당포마을 돌장승통영 미륵도 서쪽 해안에 삼덕항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이곳과 욕지도를 오가는 여객선 터미널이 있습니다. 이 여객선 터미널 맞은편 길가에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돌장승 1쌍이 서 있습니다. 당포마을 돌장승이라고 하는 장승입니다.이 돌장승 말고도 산양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고갯마루 길에 원항마을 돌장승 1쌍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 이 부...

실상사 돌장승

- 옹호금사축귀장군남원 실상사에 가면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돌장승을, 그것도 3기를 한꺼번에 볼 수 있습니다. 모두 그저 그렇고 그런 고만고만한 돌장승이 아니라 하나같이 빼어납니다.제일 먼저 볼 수 있는 돌장승은 실상사로 들어가는 다리인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있습니다. 원래 이 돌장승과 마주 보는 곳에 돌장승 하나가 더 있었는데, 1963년 홍수 때 떠...

마을 입구 길가에 있는 가산리 돌장승

- 가산리 돌장승사천땅을 깊숙이 파고든 바다는 기운을 잃고 호수와 같이 잔잔한 사천만이 되었습니다. 사천만은 다시 북쪽 축동면으로 들어와 만 주위에 비교적 기름지고 너른 평야를 만들었는데, 이곳이 가산리입니다.지금은 찾는 이도 드문 한적한 시골 마을로 변했지만 조선시대 이곳에는 가산창(駕山倉)이 있어서 큰 장이 섰으며, 다른 지방과도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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