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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호원사지

- 경주 호원사지경주 호원사지(虎願寺址)는 황성공원(皇城公園) 내에 있습니다. 이곳은 신라왕경의 북쪽 경계인 북천(北川)의 바로 위쪽입니다. 황성공원은 신라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경주실내체육관, 시립도서관, 충혼탑, 국궁장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호원사지<삼국유사(三國遺事)> 김현감호조(金現感虎條)에 의하면,...

강진 월남사지

- 강진 월남사지무위사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 월출산 남쪽 자락에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습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습니다.월남사(月南寺)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려 승 진각이 처음 창건했고, 이규보 비가 있다(高麗 僧眞覺初創 有李奎報碑)'...

나라 여행: 6. 아스카(明日香) 가와하라데라 절터(川原寺跡)

- 가와하라데라 절터타치바나데라(橘寺) 바로 북쪽에 절터가 있습니다. 가와하라데라 절터(川原寺跡)입니다.가와하라데라(川原寺)는 아스카데라(飛鳥寺(法興寺)), 야쿠시지(薬師寺), 다이칸다이지(大官大寺(大安寺))와 함께 아스카 사대사(四大寺) 가운데 하나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중세 이후 쇠퇴하여 폐사되었습니다. - 중문지에서 바라본 서쪽 회랑지절의...

절터는 풀밭으로 변하고...

- 당간지주황룡사지 서쪽 절터를 찾는 사람은 드뭅니다. 요즈음같이 절터에 풀이 무성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절터에는 하나가 밑동에서 부러진 당간지주, 동서 쌍탑으로 있었던 석탑의 몇몇 탑재들, 그리고 건물 주춧돌들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소박한 모습의 당간지주는 풀만 무성한 이곳이 절터임을 애써 알리려고 하는 듯 발끝을 곧추세우고 섰습니...

무장사지 가는 길... 잔설... 무장사지...

- 무장사지 가는 길의 표지판오랜만에 무장사지를 찾아 나섰습니다.요 며칠간 3월인데도 날씨가 겨울처럼 추웠습니다. 그런데 휴일에 봄날처럼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날씨가 풀리니 바깥으로 자꾸 유혹합니다.- 무장사지 가는 길무장사지로 가는 길은 예전에는 무척 한적했습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아무도 없는 산길을 따라 흐르는 계천 물소리와 새소리를 벗 ...

경주 황룡사지 서쪽 절터

- 황룡사지 서쪽 절터잘난 사람 옆에 있으면 떡이라도 하나 얻어먹을까요? 아니면 그 그늘에 가려 존재조차 희미해질까요?황룡사지 바로 옆에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절터가 있습니다. '구황동 제2 사지(九黃洞 第二寺址)'라고 하는 절터입니다. 이곳은 황룡사지 서쪽 가까이에 있어 황룡사지 서쪽 절터(皇龍寺址 西便寺址)로 알려졌습니다. 절터 건물지는 토단으로...

경주 사천왕사지

- 당간지주얼핏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7번 국도 길가에 당간지주(幢竿支柱) 1쌍이 서 있습니다.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가 있는 곳입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9년(669년)에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침입하려고 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明朗法師)의 건의로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절을 세우고 ...

밀양 엄광사터

- 밀양 엄광사터경남 밀양시 산외면 엄광리에 '엄광사터(嚴光寺址)'로 전하는 절터가 있습니다.엄광사터는 중산(643m) 남서쪽 자락에 있습니다. 죽촌마을 동쪽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길가에 '힐링캠프'라 적힌 표지석이 있는데, 조금 못 미친 곳에 오른쪽으로 좁은 산길이 있습니다. 이 산길을 따라 약 200m 올라가면 남원양씨 밀직공파 후손 ...

청도 소작갑사터

- 청도 소작갑사터청도 금천면 박곡리 한지 각단 마을 북쪽 골짜기 안에 기암지라는 저수지가 있습니다. 이 저수지를 지나 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길 오른쪽에 과수원이 있습니다. 과수원이 있는 이 일대는 절터입니다. 소작갑사터(小鵲岬寺址)로 알려진 곳입니다.지금 이곳에는 석불 대좌와 석탑 지대석만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석불도 있었는데, ...

경주 보문사터의 금당터

- 멀리서 바라본 보문사터의 금당터경주 보문사터(普門寺址)는 신라 진산(鎭山)인 낭산과 그리고 명활산 사이에 펼쳐진 너른 들판에 있습니다.절터는 대부분 논으로 변했지만, 당간지주와 석조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 '보문(普門)'이라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절터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문사(普門寺)는 상당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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