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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이 되어버린 섬, 진해 수도

- 웅천 괴정마을 쪽에서 바라본 수도날씨도 좋은데 휴일 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기가 아쉬워 진해 수도로 향합니다. 밖 날씨는 얼마 전과는 다르게 포근해져 이제 봄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온 듯합니다. 길가에는 이미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수도(水島)는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뭍과 다름이 없습니다. 섬과 뭍은 다리로 연결되었고, 섬의 북쪽 바...

인곡리 모과나무

- 인곡리 모과나무의림사 대웅전 오른편 언덕 쪽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인곡리 모과나무'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수령은 약 250년이나 되었으며, 키가 10m에 이릅니다. 그리고 가지들이 옆으로 퍼져 나가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이쯤 되면 나라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과나무 가운데 가장 큰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

의림사 삼층석탑

- 의림사 삼층석탑지금은 창원시가 된 마산 진북면 인곡리의 수리봉 동남쪽 기슭에 의림사라는 절이 있습니다.이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데, 하나는 신라 신문왕 8년(68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때 보조국사가 창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보아서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것이 ...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던 웅천왜성

- 웅천왜성웅천왜성은 180m 남짓 되는 남산 산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산기슭까지 돌로 쌓은 성입니다. 이 왜성은 그 규모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성해서 본거지로 삼았다고 하는 18개의 왜성 가운데서 울산 서생포 다음으로 크다고 합니다.이곳은 지형이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는 웅포만(熊浦灣)을 끼고 있어서, 왜군이 수백 척의 ...

왜성에 올라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바라보다.

- 안골왜성의 본성무너져 내린 성터는 절터와 마찬가지로 초겨울이 제격입니다.이때가 되면 한여름 무성했던 풀들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그 무엇으로도 감추지 않은 자신의 속살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차가운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아무도 찾지 않는 텅 빈 이곳은 더 쓸쓸한 느낌이 들게 되니, 이럴수록 적적한...

무덤터와 억새밭으로 변한 왜성

- 안골왜성의 지성웅천(熊川)에 있는 안골 동쪽 해발 100m의 산 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만든 성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성을 안골왜성(安骨倭城)이라 부릅니다. 산의 정상부를 깎아 평탄하게 만들어 둘레를 돌로 쌓아 본성을 만들었고, 본성 북쪽과 서쪽 두 곳에 지성(支城)을 따로 두었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바다에서 우리 수군에게 거듭 ...

안골포 굴강

- 안골포 굴강굴강(掘江)이란 배를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시설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배의 정박과 수리, 군사물자의 하역 등을 하였습니다.진해 안골에 조선시대에 만든 굴강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이곳의 굴강을 안골포 굴강이라고 하는데, 안골포 진성과는 매우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군선의 정박과 수리 등을 맡았습니다...

길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 주남돌다리사람과 사람, 그리고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길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기도 하고, 구불구불 논밭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길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간혹 강이나 내를 만나면 그곳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는 길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다리의 모습도...

한여름날의 주남저수지

- 주남저수지주남저수지는 을숙도, 우포늪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철새도래지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한여름에 찾은 주남저수지는 그저 조용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조금만 걸어도 이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다들 그늘만 찾게 되니, 주남저수지를 따라 도는 산책길은 따가운 햇살만이 반짝일 뿐 텅 빈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주남저수...

불곡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 비로전창원시 대방동에 있는 불곡사는 절 바로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차들이 달리는 큰 도로가 있어 깊은 산 속의 절과 같은 호젓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절 입구부터 어수선함과 소란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이는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저 너른 들에 불과했던 창원이 1970년대에 계획도시로 개발되어 지금처럼 바뀌면서 생긴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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